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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5/15 두더지. (3)

두더지.

분류없음 2011/05/15 03:50

해골이 달그닥 달그닥 나를 비웃는다. 언제 파묻었는지 기억은 안나는 형씨인데, 근육이 다 썩어문드러져 백골만 남은 걸 보면 족히 몇 년은 된 모양이다. 헌데 잘도 아랫턱을 움직이는군. 시끄러우니까 닥치게 하고 싶은데 어딜 보는지 눈구멍은 퀭하기만 해서 어찌 할 도리가 없다. 삽자루로 때려버릴까도 고민을 해봤지만, 역시 그건 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닐게다. 더구나 자기 손으로 파묻은 망자에 대해서는.

 

그냥 파던 구멍이나 마저 파야할 터이다.

파도 파도 끝은 없을 것이다.

사실 파서 되는 것이 아니다.

해야할 일은 정해져 있다.


누렇게 뜬 편지는 끝부분부터 바스러졌고 제철이 지난 꽃은 떨어지지도 않고 말라비틀어졌다. 아무도 땅바닥에 떨어진 것들에게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나 역시 그들을 눈높이에서 바라보았으나 그것은 내가 구덩이 안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해골은 여전히 시끄럽다. 이제는 목뼈 아래로 팔뼈와 갈빗대도 보인다. 아랫턱을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팔이 다 드러나면 그 팔로 내 멱살을 붙잡지 않을까 조금 두렵다.


왜 구멍을 파기 시작했던가. 이제는 가물가물한 기억이다. 아니 또렷하기는 하나 아무래도 상관없어져버린 감상이기에 흐릿한 걸지도 모른다. 나는 구멍을 파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렸고 그 아래에서 수십명의 해골들을 만나왔을 뿐이다. 아 물론 웃음을 터트린 백골씨는 지금 놈이 처음이지만.


이것은 필시 수단이었으나 목적으로 전가되어버린 것. 땅을 파는 지금의 나도, 해골을 파묻었던 과거의 나도 모두 목적성 없이 상황만을 휘두르는 자들이 아니겠는가. 무슨 소린지도 모르겠고 무식쟁이인 나는 그냥 땅이나 계속 파면 될 것이다. 해골의 말에 휘둘려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것은 땅을 파는 것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어느 순간 위에서 흙이 떨어진다. 그걸 다시 파낸다. 깊이는 더 깊어지지 않는다. 사람이 파는 것이다. 가본들 한계가 있는 것이다. 흙이 떨어지는 속도는 더 빨라진다. 나는 다 파낼 수 없다. 지면에 묶어두었던 밧줄도 끊어져 떨어졌다. 곤란한 일인데. 흙은 어느 사이 내 발목을 덮었다.


해골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제는 웃지 않는다. 말도 걸지 않는다. 허나 아까까지 퀭하던 눈두덩이에서 이채가 발한다. 어서오라고 눈짓한다. 이젠 나도 해골이라고, 반겨준다.


아니나 다를까 내 오른쪽 팔의 피부가 떨어져나갔다. 하얀 팔뼈가 떨어져나간 틈새로 보인다. 호오. 안쪽에 구멍이 있군. 핏줄과 신경도 어렴풋이 보인다. 누런 것은 지방인가. 털썩 주저앉았다. 다리는 이미 뼈밖에 남지 않았다. 걸치고 있던 옷도 어느새 다 먼지처럼 부서졌다.


나는 내 무덤을 파고 있었던걸까. 바스러진 편지처럼, 말라비틀어진 꽃잎처럼 제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자리가 필요했던 걸게다. 남겨본들 아무도 보지 않았을 그 모습 때문에.


이제 나를 찾을 사람은 없다. 위에서 흙을 밀어넣는 나는 도대체 어떤 나일까. 언젠가 저 나도 다시 구덩이를 파고 여기까지 내려오겠지. 그러면 나는 저 해골과 함께 그 때에 가서 비웃음을 날려주면 될 것이다.


그때까지 아랫턱 움직이는 방법을 연구해야겠다. 다행히 내게는 할 일이 생겼다.


흙이 머리 위를 덮었다. 시야가 어두워졌다. 아랫턱은 밑에 쌓인 흙때문에 벌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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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위상